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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머문곳

가천 다랭이마을 .. 남해

by kelpics 2015. 4. 11.

가천 다랭이 마을 전경

 

 

가천 다랭이 마을은 왼쪽에 설흔산 오른쪽에 응봉산의 호위를 받는 듯한 모양세인데, 바다에 인접한 비탈진 터전에 한뼘의 땅이라도 더 논을 내고 힘겹게 농사를 지으며 고단한 삶을 일구어갔던 옛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봄꽃이 한창인 남해에서의 여행길은 여기저기 꽃들의 유혹에 이끌려 목적지로 가는 길이 자꾸만 지체된다. 마을 입구에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은 어느새 유명 관광지로 변모해 있는 마을의 근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 하며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아 방치되고 있는 논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집을 헐고 새로 지을 수도 없다는데, 고급 숙박시설과 주점들만 가득하고 술취한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마을 안쪽 분위기도 한적하고 평화로운 농촌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관광지를 농촌 마을로 착각했던 생각의 차이가 너무 컸었나 보다.

 

 

 

 

마을 아래 해안 풍경

 

마을 앞바다는 험한 바위가 많고, 파도가 높아 배를 댈만한 곳이 없다.
때문에 바닷가 마을이지만 배로 고기를 잡는 대신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가파른 경사의 마을길

 

 

 

 

 

마을 위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

 

 

 

 

 

 

 

산비탈 등고선을 따라 형성된 논의 형상은 그대로이지만
아직은 모를 심을 때가 안 돼서인지 논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들

 

 

 

 

 

우렁을 형상화 한 조형물

 

 

 

 

 

암수바위(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3호)

 

 

이 암수바위를 이곳 사람들은 미륵불(彌勒佛)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숫바위를 숫미륵, 암바위를 암미륵이라 일컫는다. 숫미륵은 남성의 성기와 닮았고, 암미륵은 임신하여 만삭이 된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1751년(영조 27)에 남해 현령(縣令)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그 위로 우마(牛馬)가 다녀 몸이 불편하니 꺼내어 세워주면 필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후 현령은 이 암수바위를 꺼내어 미륵불로 봉안하였다. 또 논 다섯 마지기를 이 바위에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어민들은 지금도 이 바위를 발견한 날인 음력 10월 23일을 기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뱃길의 안전과 많은 고기가 잡히기를 빌고 있다. 이 바위는 원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선돌(立石)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기능이 바다와 마을의 수호신으로 확대되어 미륵불로까지 격상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 지녔던 풍요와 다산의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오늘날에도 아들을 갖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장소로 남아 있다.

 

 

 

 

마을 아래 바다와 접한 해안 풍경

 

 

 

 

 

 

 

유채꽃과 어우러진 옥빛 바다의 해안 풍경이 절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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