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설악산 경관을 보기 위해 어둠을 뚤고 먼 거리를 달려 왔다. 많은 사람들이 산정에서 일출을 맞이하거나 장거리 산행을 위해 어두운 새벽에 산행을 감행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도저히 그럴 에너지가 없다. 설악동에 도착하여 간단히 아침을 먹고나니 날이 밝아오고, 주차장은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분주하다. 공룡능선은 처음 걸어보는 길이면서 험로이기에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언제나 출발은 기대감에 설레이게 마련이다. 걸어보니 역시 길고 험한 공룡능선이다. 예상했던 소요시간이 초과되어 하산 도중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하게 되었지만 청명한 가을 날씨속에 단풍이 절정을 이룬 설악산 최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으니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산행일자 : 2016년 10월 15일 (토)
△산행코스 : 소공원주차장 → 비선대 → 마등령 → 공룡능선 → 무너미고개 → 양폭대피소 → 비선대 → 소공원주차장
△산행거리 : 18.9km
△소요시간 : 13시간 19분 (휴식 2시간 26분 포함)
설악산 공룡능선(雪嶽山恐龍稜線)은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으로서, 그 생긴 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하여 공룡릉(恐龍稜)이라 불린다. 강원도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이기도 한 공룡능선은 마등령에서 신선대까지 능선을 가리키며, 내설악의 가야동계곡, 용아장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외설악의 천불동계곡부터 동해 바다까지 시원하게 펼쳐진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2013년 대한민국의 명승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신흥사 일주문에 들어서서 통일대불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무사 산행을 기원한다.
숲에 들어서며 맞는 가을 아침의 신선함이
새벽 잠을 설치고 먼길을 달려온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 주는 듯하다.
옥빛 계곡수와 단풍 빛이 어우러지는 계곡의 풍경도
바라볼수록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청량제가 되어준다.
기암절벽 아래의 거대한 너럭 바위에 못을 이루는 비선대는
와선대에서 노닐던 마고선이라는 신선이 이곳에 와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확히 구분은 안되지만 왼쪽 미륵봉의 중턱쯤에 금강굴이 있다.
비선대에서 이어지는 천불동계곡과 뒤쪽에 칠성봉(七星峰)..
이 계곡을 따라 천당폭포까지 유유자적 걷는 것도 설악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구간이다.
비선교를 건너 왼쪽(南)은 천불동계곡을 지나 대청봉으로 이어지고
오른쪽(西)은 금강굴을 지나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하산 시 다시 만나게 될 천불동계곡의 모습을 담아보고 금강굴 방향으로 오른다.
금강굴로 향하는 언덕 곳곳에 단풍이 화려하게 물들고 있다.
간혹 보이는 산객들은 모두 우리를 앞질러 간다.
빨리 오를 수도 없을뿐만아니라 원래 느림 걸음이기에 시간이 부족할까 신경이 쓰인다.
곧이어 금강굴이 올려다 보이는데,
금강굴은 원효대사가 수도했던 곳으로, 그 이름은 그의 저서 금강삼매경론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전에 가봤던 기억이 있어 오늘은 시간상 금강굴 관람은 생략한다.
가파른 경사에 쉬어가라는 듯
붉게 물든 단풍이 손님을 맞이하듯 반겨준다.
얼마쯤 올랐을까?
간간이 숲사이로 보이던 전망이 트이고 웅장한 산세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능선을 물들인 단풍빛이 기암절벽 곳곳으로 번저가고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설악이 그 멋을 한껏 분출하고 있다.
산행초반부터 전망이 트이는 곳을 만나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애써 멈춰서서 사진에 담아본다.
길은 쉼없는 오르막으로 이어지다가
한동안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완만한 길을 지나간다.
바위능선 쉼터에서 바위에 올라서자
지나갈 공룡능선과 동북쪽으로 뻗어내리는 설악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 살짝 세존봉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마등령에서 신선대로 이어지는 공룡능선이 펼쳐있다.
저 힘차고 날카로운 산세를 보라.
날카로운 갑옷을 두른 공룡의 등과 같은 기세가 느껴지는가?
뒷쪽에 대청봉에서 동북으로 뻗어내린 화채능선이 공룡을 감싸고 있다.
오늘은 미세먼지 나쁨 수준의 예보와 달리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이 아름다운 경관이 아니라면
긴 오르막의 힘겹고 지루함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점차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공룡능선 뒤로 대청봉이 보이고
오른쪽에 큰새봉, 가운데 1275봉, 왼쪽 뒤로 화채능선에 걸린 봉우리가 신선대일 듯하다.
마등령에 오르는 계단에서 다시 왼쪽으로 펼쳐진 설악산의 경관을 담아본다.
능선에 불뚝 솟은 세존봉이 어느새 왼쪽에 서있다.
비선대에서 공룡능선의 기점인 마등령 삼거리까지 3.5km 거리에 약 3:20분이 소요되었다.
마등령(馬等嶺, 1,220m)은 마치 말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북쪽의 미시령, 남쪽의 한계령과 함께 태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주요 통로였다고 한다.
“무분별한 불법산행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생명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을 버린다면 이들은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마등령~미시령 구간을 통제하는 안내판의 내용이다.
마등령삼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공룡능선 탐방을 시작한다.
하산 기점인 무너미고개까지 4.9km로 수없이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가운데
구비마다 펼쳐지는 대자연의 걸작을 마주하게 된다.
능선 오른쪽에 뿔처럼 튀어나온 세존봉(1,186m)봉이 외롭게 서있다.
능선 오른쪽에는 설악의 또다른 암벽능선인 용아장성이 보이고
그 뒤로 오른쪽 귀때기청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펼쳐 있다.
나한봉은 불교의 수호신인 나한(癩漢)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공룡능선의 암릉구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봉우리이다.
오후가 되니 간혹 비켜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마주오는 산객들이 점점 많아진다.
큰새봉은 마치 거대한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비상하려는 듯한 형상이다.
도열하듯 늘어선 기암괴석 사이로 길이 참 멋지게 나있다.
순환하는 생명력은 꽃을 피우고 또 낙엽으로 지고..
능선 곳곳을 장식하는 기암괴석들은
공룡능선을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고산 기후 때문일까? 단풍 빛이 대체로 파스텔 톤을 띄고 있다.
1275봉 북사면 안부에는 비교적 넓은 공터가 있고
거대한 암벽사이 북동쪽으로 열린 공간 너머로 세존봉과 울산바위가 조망된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고개를 오르내려야 할까?
이제 체력이 고갈되어 오르막에서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1275봉 고갯마루에 도착해서 한동안 쉬고 있는데
왼쪽 암벽을 올라 정상까지 왕래하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꽤 많이 걸은 듯한데 신선대는 아직도 까마득해 보이고
무너미고개까지는 2.8km를 더 가야 한다.
1275봉 고개를 넘어서며 촛대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는 반대 방향에서 보면 남근바위를 닮았다고도 한다.
몸은 지치고 갈길은 멀지만 곳곳이 절경이니 마음은 여유롭다.
마치 산정에 탑을 쌓아 놓은 듯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암봉을 우회하여 오른다.
우람하고 육중한 암봉을 무수히 지나는 길이 또한 공룡능선이다.
암봉을 우회하며 돌아보니 어느새 1275봉이 저만치 멀어져 보인다.
저 멋지지만 날카로운 암봉들은 또 어떻게 지나게 될까?
길은 항상 거기에 열려있고 염려한다고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니
나아갈 길을 미리 염려하지 말고 부딪혀 보라.
어느새 날카로운 용아장성과 서북 능선이 가깝게 다가와 보인다.
마지막 봉우리인 신선대 뒤로 대청봉도 바로 건너편에 솟아있다.
반갑게 다가오는 저 신선대는 마등령과 함께 공룡능선을 걷는 산객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공룡과 여의주.. 또는 돼지와 강원도 감자바위라는데..
신선대로 향하는 길목에 기묘한 형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능선 쉼터에서 다시 돌아보니
무리지은 암봉들 가운데 1275봉이 단연 으뜸으로 솟아 있다.
오른쪽 장군봉 아래에서 왼쪽 마등령에 올라 지나온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날카롭게 솟은 공룡의 등줄기 너머로 마등령봉이 보이고
그 뒤로 백두대간 능선이 겹겹이 이어진다.
이제 희운각이 보이는 능선 안부를 향해 하산길로 접어든다.
무너미고개는 내설악의 가야동 계곡과 외설악의 천불동 계곡 사이를 잇는 고개이다.
마등령에서 표지판 기준 4.9km에 4:40분이 소요되었다.
첫 발걸음에 힘에 부친데다 여러 풍경을 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계곡에 들어서니 금새 어둠에 싸일 분위기이다.
일몰시간 20여분 전이니 계곡의 경관을 감상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천당폭포는 천불동계곡 상류에 있는 마지막 폭포로
이곳에 이르면 마치 천당에 온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천당폭포 주변 경관은 가히 천당을 짐작케 할만한 비경을 보인다.
양폭대피소를 지나자 계곡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더이상 천불동계곡의 가을 비경을 못보고 지나친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오련폭포를 지나면서 더이상 사진을 찍지 못할 정도로 어두워졌다.
이후 소공원까지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걸어야 했다.
장시간 산행과 어둠속에서도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어려운 길을 끝까지 인내하며 함께해 준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설악산 산행안내도 (출처 : www.joytr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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