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일기가 좋지 않아 산행을 망설이던 중 토요일 저녁 호남지역의 대설예보를 보고 다음 날 설경 산행지로 알려진 전북과 전남의 경계에 있는 방장산으로 향했다. 밤사이에 눈은 예상보다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비교적 청명한 날씨속에 곳곳에 피어난 눈꽃과 겨울산의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산행이었다.
△산행일자 : 2017년 12월 17일 (일)
△산행코스 : 장성갈재→쓰리봉→방장산→억새봉→양고살재
△산행거리 : 8.7km (GPS측정 기준)
△소요시간 : 4시간 55분 (휴식/사진촬영 29분 포함)
영산기맥에 속한 방장산은 장성갈재에서 양고살재로 주능선을 이루는 독립된 산군형태를 보이고 있어 두 고개마루가 산행의 기·종점으로 이용된다. 오늘 산행은 장성갈재를 출발하여 양고살재에 도착하는 코스로 진행하였는데, 쓰리봉에서 방장산까지의 구간에서 종종 암릉지대를 지났지만 그 외에는 부드러운 육산의 길이었다.
갈재 통일공원 앞에 주차를 하고
방금 전 출발한 단체 산행팀의 발자국을 따라 입구에 들어선다.
“바람도 쉬여 넘난 고개 구름이라도 쉬여 넘난 고개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도 다 쉬여 넘난 고봉장성령 고개
그 너머 님이 왓다 하면 나난 한 번도 아니 쉬여 넘어가리라.”
예부터 ‘갈재(노령)를 넘어야 진짜 호남’ 이라는 말이 있듯이
갈재는 표고 276m의 그리 높지 않은 고개지만
큰 산이 드문 남도지방의 지형으로 볼 때 옛날에는 넘기 힘든 재였다고 한다.
숲은 밤새 내린 눈으로 꽃을 피우고..
연속되는 오르막에서 눈길을 끄는 설경을 보며 가쁜 숨을 가라앉힌다.
방장산은 산이 신령스럽고 산세가 깊어
옛날에는 도적떼가 많았다고 하는데..
도적떼에게 잡힌 여인이, 남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아
애통해 했다는 내용의 방등산곡(方登山曲)이 전해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가파른 경사가 끝날 때 쯤 오른쪽 산길로 난 발자국을 따라
동쪽으로 시원하게 열린 바위 전망터에 선다.
전망터에 서니 발아래 지나온 516봉이 보이고
가운데 시루봉이 날개를 펼치듯 좌우로 힘차게 산줄기를 뻗어
왼쪽 입암산 갓봉과 뒤쪽에 내장산, 백암산 일대를 감싸고 있다.
영산강의 분수령인 영산기맥은
호남정맥의 내장산과 백암산 중간 지점인 순창새재에서 분기하여
입암산을 거쳐 이곳 방장산을 지나 목포 유달산까지 이어진다.
입암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정읍시 입암면 일대에는
호남고속도로를 중심으로 KTX 고속철도와 1번국도 등이
국토의 동맥처럼 하얀 벌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어서 쓰리봉에 도착하니
봉우리 주변의 화려한 눈꽃이 정상을 대신해 눈길을 끈다.
쓰리봉(734m)..
고창, 정읍, 장성 등 3고장이 만나는 경계지점이다.
바위군으로 형성된 쓰리봉은 ‘써레봉’, ‘서래봉’으로 불렸었는데,
6・25 한국전쟁 때 미군에 의해 쓰리봉이라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왼쪽 내장산국립공원에서 오른쪽 백암제까지..
동쪽으로 열린 탁트인 전망과 눈꽃에 이끌리다보니
쓰리봉에서 다른쪽 조망을 미처 살펴볼 겨를도 없이 지나쳐버렸다.
쓰리봉 이정표..
장성갈재에서 1.8km, 방장산 정상까지는 3.4km 지점이다.
쓰리봉을 내려서는 데크계단 주변에도
화려하게 피어난 눈꽃이 겨울 산의 진수를 보여준다.
나뭇가지에 눈이 쌓여 얼어붙은 눈꽃은
상고대와 달리 기온이 낮고 바람이 없어야 한동안 유지될 수 있을듯 한데..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한낮에도 이처럼 온전한 눈꽃을 볼 수 있다는 건..
쉽게 만날 수 없는 행운이 아닐까 생각된다.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빛나는 눈꽃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길은 다시 눈덮인 숲을 지나고..
전망이 열리며 쓰리봉을 돌아보니..
그저 삭막하게만 보였을 겨울산이 눈꽃으로 색다르게 다가온다.
조망이 열리는 암릉구간에서는 걸음마져 여유로운데..
방장산 능선은 거친 바위들과 부드러운 숲이 조화로운 산이었다.
이제 진행방향으로 둥그런 곡선을 그리며 주능선상에 정상이 드러나고..
(오른쪽부터 연자봉, 봉수대, 방장산)
돌아보면.. 걸어 온 만큼
지나온 봉우리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져 간다.
일련의 산군을 이루는 내장산국립공원에서부터
호남정맥의 마루금을 따라 동남쪽 무등산 방향을 바라보는데..
희미한 병풍산과 불태산 사이쯤에 있을
무등산은 역광에 숨은듯 보이지 않는다.
다시 주능선상에 펼쳐진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산행을 이어간다.
(오른쪽 두 번째 부터 서대봉, 연자봉, 봉수대, 방장산)
주능선 아래 산허리에 구불구불한 임도가 보이는데..
갈재에서 시작되는 방장산 임도는 길이 16.9km로 자전거임도로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여기저기 경관을 담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앞서가는 동반자를 잠시 멈춰 세워본다.
그 사이 쓰리봉이 지나온 봉우리 뒤에 서있다.
안부로 내려서니 다가오는 서대봉이 한없이 높아 보이고..
오른쪽 뒤로 멀리 선운산 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서대봉을 오르며 멀어진 쓰리봉을 보니
역시 부드러운 육산의 면모와 함께 주변을 압도하는 당당함이 전해진다.
봉수대에 다가서며..
봉우리를 오르내리느라 힘이 빠진 상태에서 날카롭게 솟은 봉수대의 기세에 질릴만도 한데..
봉수대는 정상으로 가는 막지막 관문이며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힘겹게 봉수대 암릉을 오르며..
멋지게 펼쳐진 지나온 방향의 경관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봉수대(715m)..
봉수대는 터만 남아있고 지금은 헬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뾰족한 암봉으로 보였지만 정상에는 넓은 평지가 조성되어 있고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어간다.
봉수대에서 바라본 경관..
왼쪽에 지나온 연자봉, 서대봉, 쓰리봉이 줄지어 솟아있고
뒤로는 내장산국립공원의 산군들..
오른쪽 아래로 백암제 너머 북이면소재지가 보인다.
봉수대를 지나니 정상이 눈앞이다.
정오가 지나며 능선의 눈꽃도 점차 녹아내리는 듯..
정상을 오르며 남쪽으로 절벽이 형성된 거친 봉수대 암봉을 돌아본다.
방장산(方丈山, 743m)..
전북 고창군과 정읍시, 전남 장성군의 경계에 솟은 산으로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추앙받아온 산이라고 한다.
옛 문헌에 방장산은 ‘방등산’ 또는 ‘반등산’으로 기록되어오다가
중국의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과 닮았다 하여 방장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산이 크고 넓어 모든 백성을 포용한다는 의미에서 방장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방장산에서 바라본 동북쪽 전경..
정상에서 동북쪽 장성갈재로 이어지는 주능선의 봉우리들..
(왼쪽부터 봉수대, 서대봉, 쓰리봉)
산허리에는 갈재에서 방장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보인다.
쓰리봉 뒤로 입암산과 내장산 그리고 백암산 줄기..
그 오른쪽 추월산 너머 지리산 방향을 바라보지만
정상에서 보인다는 지리산은 웬만한 날씨가 아니면 보기 어려울 듯하다.
가운데 시루봉에서 왼쪽 갓봉을 돌아 이어지는 입암산 능선과
그 뒤로 내장산의 망해, 연지, 까치, 신선봉, 그리고 백암산까지 선명하게 다가온다.
정상을 내려서며 죽청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점심과 함께 휴식을 취하며 멀리 무등산 방향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무등산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남서쪽으로 눈을 돌려
갈미봉 능선 너머에 펼쳐진 영산기맥 산들의 산그리메를 담아본다.
고창군이 있는 서남쪽으로 가야할 억새봉과 벽오봉이 보이고..
고창고개로 내려서는데 오후의 햇살속에도 눈꽃은 여전하다.
고창고개를 지나고..
억새봉에 닿기 전 신선봉 코스는 눈에 덮혀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조성된 억새봉을 오르며..
경사면 너머로 드넓은 고창의 들녘을 바라보고..
추운 날씨로 텅 빈 활공장의 정점에 올라선다.
억새봉(636m) 정상에서 방장산을 바라보니
패러글라이딩 조형물의 불끈 쥔 주먹과
방장산의 부드러운 능선에 주름진 골이 서로 잘 어울리는 듯하다.
서쪽은 고창군 신림면..
그 뒤는 오른쪽 경수산에서 선운산, 청룡산으로 이어지는 선운산도립공원이다.
바람이 눈위에 만들어낸 물결도 담아보고..
방장산(방등산)에 얽힌 방등산곡의 사연을 전해주는 방등산가비..
억새봉을 비우고 넘어서니 또 한 팀이 올라오고..
인접한 벽오봉에 오르기 위해 양고살재 방향으로 향한다.
억새봉을 돌아보며..
지금은 잔디가 심어진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변모했지만
완만한 능선에 억새가 가득했을 억새봉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본다.
벽오봉(640m)..
벽오봉은 방문산(方文山)이라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방장산의 丈(장)자를 文(문)자로 잘못 오기한 것이라고 한다.
벽오봉에서 서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고창읍을 바라보고..
그 왼쪽으로 고창군 공설운동장과
뒤로 문수산, 불갑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을 바라본 뒤..
마지막으로 지나온 방장산을 바라보고 벽오봉을 내려선다.
벽오봉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얽힌 이야기로
오래전 고창 주변이 바다였을 때 오동나무를 싣고 가던 선박이
벽오봉에 부딪쳐서 난파된 뒤 오동나무가 자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기록이 있다는데..
오동나무는 보이지 않고 소나무 한 그루만 외롭게 서있다.
마지막으로 갈미봉(572m)에 올라서서..
나무 사이로 고창, 장성의 산들을 조망해보고..
빠른 걸음으로 하산한다.
갈미봉을 내려오며 등로 왼쪽 산중턱에 보이는 방장사는
시간상 들르지 못하고 곧바로 양고살재로 내려섰다.
양고살재(300m).. 오늘 산행의 종착지다.
전라북도 고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병자호란 때 고창 출신 박의장군이 수원 광교산 전투에서
청의 적장 양고리를 사살한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암릉과 육산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봉우리가 많아 전망이 뛰어난 방장산..
시원한 전망과 함께 하얀 눈꽃으로 겨울산의 멋을 제대로 실감했던 산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입암저수지 너머로 힘차게 솟은
입암산(갓봉)에서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담아본다.
오늘 산행 내내 멋진 경관을 보여주었던 산으로 언젠가 가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GPS 산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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